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교정, 한 소녀가 교실 창가에 앉아 있었다. 혜인은 책을 펼쳐놓고도 시선은 창밖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멀리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명, 준성이었다. 키가 크지도, 눈에 띄게 잘생긴 것도 아니었지만, 준성은 혜인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날 혜인은 소녀다운 용기로 준성에게 편지를 건넸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준성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편지만 받아들고 사라졌다. 그 후로도 준성은 혜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학기가 끝나고, 졸업식이 지나며 준성은 혜인의 삶에서 사라졌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몇 번의 연애를 하고 헤어진 이야기를 들으며, 혜인은 늘 웃어넘겼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준성. 그의 이름은 첫눈이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떠올랐다. 그는 혜인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처럼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다. 출근길에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혜인은 우산도 없이 눈을 맞으며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중,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겼다.
그날 퇴근길, 혜인은 대학 동창들과의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한 카페로 갔다. 눈이 쌓인 거리를 지나 도착한 따뜻한 카페. 혜인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익숙한 얼굴을 마주했다.
“혜인?”
바로 준성이었다. 그는 동창 중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 그리고 단정한 모습이 변하지 않았다. 혜인의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준성…?”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동창 모임이 끝난 후, 준성은 혜인에게 다가와 말했다.
“잠깐 이야기할래?”
둘은 카페를 나와 눈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중학교 때… 네가 준 편지, 아직 가지고 있어.” 준성이 갑작스러운 고백을 했다.
“정말?” 혜인은 놀라서 멈춰 섰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서 네가 많이 실망했겠지만… 난 널 잊은 적 없어.”
준성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혜인은 눈물을 참으며 조용히 말했다.
“나도 널 잊은 적 없어. 항상 첫눈이 내릴 때마다 네가 생각났어.”
그날 밤, 둘은 어색한 웃음과 함께 과거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첫눈이 내리던 날, 첫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엔 어리숙한 소년과 소녀가 아닌, 서로의 진심을 알아갈 준비가 된 어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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